2021년 10월, 10년 동안 상업적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이 앱을 기초부터 다시 만드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바로 굿닥의 이야기인데요. 그 배경과 의지를 담은 CEO Jason의 선언문을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살펴봅니다. 어떻게 굿닥은 Healthcare Super App으로의 도약을 꿈꾸게 된 걸까요?
컴퓨터를 쓰면서 가장 처음 배우고 가장 잘 안 까먹게 되는 단축키 중 하나가 “CTRL + ALT + DEL” 입니다. 요즘은 많이 안정되어 쓸 일이 적어졌고 용도도 바뀌긴 했지만, 응답 없음과 블루스크린의 향연이 자주 펼쳐진 과거 버전의 WIndows에서는 재부팅 단축키로 요긴하게 쓰였었죠.
여러 가지 무거운 작업이 쌓여 시스템이 마비된 것처럼 느려졌을 때 CTRL + ALT + DEL 을 통해 초기화된 컴퓨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가벼운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저장이 안된 문서나 디자인 파일이 있는 채로 컴퓨터가 먹통이 되어 눈물의 CTRL + ALT + DEL 을 누를 때는 이미 쌓은 노력의 산물조차도 모두 날아가 버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도 했죠.
굿닥은 2012년 2월에 시작한 회사입니다. 회사가 9년 반의 세월을 지나면서 제품, 개발, 조직, 경영에 많은 변화와 축적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재무 상황 속에서 피인수가 되기도 했고 눈부신 자연 성장organic growth을 기록하기도 했고 상장의 기쁨도 느껴보았습니다. 사업과 제품의 정체와 위기도 겪어보고 긴급한 상황에서 만든 유용한 제품의 힘으로 300만 다운로드를 2주 만에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2020년 7월 물적분할을 통해 케어랩스의 사업부가 아닌 “주식회사 굿닥”이라는 이름의 스타트업으로 새 출발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품, 개발, 조직, 경영에 쌓여있는 여러 유산 legacy 들이 가지는 영향은 스타트업이 가진 빠른 실험과 빠른 성장이라는 장점을 살리는 데 있어 적합하지 않은 점들이 있었습니다. 9년 반이라는 시간과 함께 축적된 여러 가지 부정적 유산들 (기술 부채, 제품 품질, 기업 문화, 경영 비전) 을 부인하기 어려웠고 성장의 곡선은 꾸준히 만들어냈지만 그 기울기는 스타트업이 추구하는 기울기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 유산들은 마치 Active X 플러그인처럼 언제 쓰는지 안 쓰는지도 알기 어렵지만, 회사의 자원을 많이 소비하고 있었고 실행과 성장 속도에도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회사도 CTRL + ALT + DEL을 누를 수 있을까? 우리가 9년 반 동안 해 온 것을 모두 저장하기는 어렵겠지만 오히려 지금은 고객(사용자)만 바라보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제품도 기술도 조직도 문화도 경영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면 어떨까? 라고 말이죠.
부팅 booting의 사전적 의미는 “장화를 신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농촌에서 일하러 나갈 때 장화를 신는 것과 마찬가지로 컴퓨터를 구동하기 위한 일련의 여러 과정을 거치는 것을 뜻합니다. 컴퓨터는 바이오스니, OS니, 커널이니 하는 것들을 통해 부팅시키는데 회사를 부팅시키려면 어떤 것들이 실행되어야 할까요? 굿닥은 제품, 기술, 조직, 문화, 경영을 원점에서 다시 바라보고 새롭게 만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요? 가장 빨리 바꿀 수 있는 것 바로 경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부팅을 초래한 무거움의 원인은 결국 경영 의사결정과 비전이고 이를 날카롭게 가다듬고 집중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우리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으려면 1,000가지 부탁을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라고 했던 말을 되새기며 역으로 1,000가지 부탁을 하는 경영이 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제한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핵심적인 사업에 집중하고 고객의 범위에 대한 규정과 소구점도 보다 좁히고 핵심 관리 지표의 범위도 좁혀나갔습니다. 이를 구상하고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의 리더쉽을 재정의하고 그분들에게 제품, 기술 방향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위임을 통해 박스 밖의 생각 thinking outside of the box 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제품 주도 성장 product-driven growth라는 키워드를 통해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성장의 방식을 하나로 좁혀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새롭게 그린 집중된 비전을 함께 만들어 나갈 조직과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전에 무엇을 이뤘는지 이야기하는 조직이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만들고 이뤄나갈지 이야기하는 조직이 되려 합니다. 제품의 품질과 고객의 만족에 대해서 높은 기준을 가지고 부족함에 대해서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빠르고 잘 개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자 합니다.
굿닥이 앞으로 만들어 갈 재부팅의 과정과 결과를 계속해서 기록으로 남길 예정입니다. 요즘 기업의 수명이 계속 줄어 상위기업의 평균수명도 15년까지 줄어들었다고 하는데요. 굿닥이 재부팅이라는 도전을 통해 기업이 다시 젊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증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재부팅의 결과물들이 훌륭할수록 이 도전을 함께해주실 Co-founder 분들과의 만남도 더 늘어나리라 생각됩니다. 꼭 그렇게 만들 겁니다.
2021년 10월
임진석 Jason lim